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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과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만남

Koreatown Story

뉴욕 롱아일랜드 한인이민역사 문화지도

<1면> 파일:뉴욕코리아타운 문화지도 롱아일랜드1001.jpg <2면> 파일:뉴욕코리아타운 문화지도 롱아일랜드1002.jpg


역사적 배경

19세기 말 대한제국은 내우외환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반면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청일전쟁(1894.8.1 – 1895.4.17), 러일전쟁(1904.2.8 – 1905.9.5)에서 잇따라 승리한 일본은 동북아의 패권국으로 등장했다. 1905년 말로 가면서 대한제국은 점점 일본의 식민지화 되어 가고 있었다. 고종 황제는 이렇게 풍전등화와도 같았던 대한제국의 운명에 대해 미국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미국은 서양 열강 중 조선이 가장 먼저 외교관계를 맺은 나라였다. 양국은 1882년 5월 22일 총 14개 조항으로 된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었다. 특히 본 조약의 제 1조는 다음과 같았다. <ref>조미수호통상조약. 위키백과</ref>


사후로 대조선국 군주와 대아미리가합중국(大亞美理駕合衆國) 백리새천덕(伯理璽天德, President) 및 그 인민은 각각 영원히 화평우호를 지키되 만약 타국이 불공경모(不公輕侮)하는 일이 있게 되면 일차 조지(照知)를 거친 뒤에 필수상조(相助)하여 잘 조처함으로써 그 우의를 표시한다.


위의 내용에 때르면 일본이 대한제국을 침탈 시 미국은 당연히 대한제국을 돕는 것으로 되어 있다. 고종 황제는 이 조약의 제 1조에 희망을 가졌던 것이다.


시대적 상황

파일:러일전쟁1.jpg

러일전쟁 당시 조선의 모습을 묘사한 삽화 : 자료출처


1904년 러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세계 각국의 예상과 달리 러시아 발틱함대를 제압하여 전쟁 초기에 큰 승리를 거뒀지만 러시아와의 전면전으로 치달아 전쟁이 장기화되면 불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러시아도 국내의 혼란한 정국으로 일본과의 전쟁을 더 이상 원하지 않았다.


한편 1898년 스페인으로부터 필리핀의 지배권을 양도 받은 미국은 필리핀을 기반으로 아시아의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했다. 미국은, 러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났지만 조기 전쟁 종식을 희망하고 있는 일본의 상황을 알고 이를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확고히 하는데 유리한 기회라 생각했다. 이에 따라 1905년 6월 시어도어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은 일본과 러시아의 전쟁 종식을 위해 두 달 후인 8월경 미 동부 뉴햄프셔주 포츠머스에서 러일강화회의를 개최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리고 7월 초에는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러일강화회의를 중재하기로 3국이 모두 합의했다.


이러한 소식을 접한 하와이 한인사회는 러일강화회의에 대표를 파견하여 대한제국의 상황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계획을 세웠다. 당시 하와이에서 한인들의 권익옹호에 힘쓰던 윤병구 목사에게 그 임무를 맡기게 됐다. 마침 미국 육군장관 윌리암 하워드 태프트가 7월 7일 루즈벨트 대통령의 딸인 앨리스와 함께 일본으로 가는 길에 호놀룰루에 들르자 윤병구는 하와이 총독대리 앳킨슨의 도움으로 한인대표의 자격으로 그를 찾아가 미국 대통령을 만날 수 있는 소개장을 받았다.<ref>로창현. ‘삼일혁명100주년’ 미국내 독립운동 성지를 찾아서(3).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 기획취재 시리즈>. 세계한인언론인협회. 2019.9.15.</ref>


뉴욕 롱아일랜드 문화지도

참고 문헌

<references/>


뉴욕 롱아일랜드 한인 사회와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