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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주 코리아타운

Koreatown Story
rc3_1>Dwjoo님의 2025년 1월 8일 (수) 19:20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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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뉴욕 메트로지역 코리아타운.jpg

미국 동부 연안주는 미드애틀랜틱(Mid Atlantic)으로 불리워진다. 미드애틀랜틱은 (1) 뉴욕, 뉴저지 (2) 펜실베이니아 (3)워싱턴DC, 버지니아, 웨스트버지니아, 델라웨어, 메릴랜드 등의 세 지역으로 나눠 볼 수 있다. 뉴욕 주와 뉴저지 주는 뉴욕시의 배후지라 볼 수 있고, 버지니아는 원래 남북전쟁 때 남부의 수도 리치먼드가 있는 등 남부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노예제를 둘러싼 이견으로 분리된 웨스트버지니아와 함께 수도권 및 미드애틀랜틱의 한 부분이라 봐야 한다. 펜실베이니아는 바닷가에 있는 필라델피아를 제외하고 거의 숲이 울창한 산지인데 면적은 크지만 마을이 드문드문하고 인구가 적다.


뉴욕시는 미 동북부의 중심 도시일 뿐 아니라 미국의 최대 도시, 나아가 ‘세계의 수도’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만약 온 세계가 하나의 나라가 된다면 어디를 수도로 삼아야 할까? 나폴레옹은 이스탄불이라고 했다 한다. 유럽과 지중해 중심의 사고로 본다면 탁월한 선택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세계 수도는 런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꽤 있다. 영국을 비롯한 53개 영연방국가 국민들은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하고, 유럽과 아프리카, 중동지역 사람들도 런던에 한 표를 던질 사람이 많다. 하지만 남북미와 아시아에서는 뉴욕을 꼽을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1952년 이래 UN본부가 뉴욕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도 세계 수도라 불리는 까닭의 하나다.<ref>미국 가는 길 (3) 뉴욕과 미드애틀랜틱 | 테니스인 | 2017.03.31</ref>


1970년대 중반은 뉴욕의 한인사회가 급변하는 시대였다. 1968년 시행된 새 이민법으로 한인 유입이 늘어나면서 인구 규모가 커졌고 자연스레 한인사회도 팽창했다. 뉴욕의 대표적인 한인 단체인 '뉴욕한인회'는 1960년도에 창립됐지만 70년대 중반부터 규모와 기능이 확대, 강화됐다. 그리고 83년도에 현재 맨해튼 24스트릿에 있는 지금의 한인회관 건물을 구입했다.


인구 증가와 커뮤니티의 팽창은 한인 경제 규모 확대로 이어졌다. 70년대 초까지 뉴욕 한인들의 주요 사업 종목은 가발이었다. 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을 맞아 발행된 '대뉴욕 한인 100년사'에 따르면 65년 맨해튼 브로드웨이 등지에 35개의 가발 수입 및 도매상이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가발 사업은 75년 이후 쇠퇴기를 맞는다. '뉴욕한인모발조합'이 시장 독점 공급을 시도했다가 반독점 금지법 위반 혐의로 미국 업체들로부터 소송을 당하고 말았다. 때마침 불어닥친 경기 침체와 이 사건을 계기로 가발 사업은 급격히 사양길로 접어들었고 한인들은 잡화상 등으로 업종을 바꾸기 시작했다.


참고자료


각주1

<references/>


파일:코리안리서치센터 로고.jpg 파일:재외동포재단 로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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