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현,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뉴욕지회장
| 인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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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남태현 사진1.jpg | |
| 이름: | 남태현 |
| 영문: | Nam Taehyun |
| 출생: | 1937년생 |
| 학력: | 한국외대 스페인어과 |
| 경력: |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뉴욕지회장 |
라스팔마스 지도
1. 파일:라스팔마스 지도1.jpg 2. 파일:라스팔마스 지도2.jpg
1. 라스팔마스의 위치 2. 라스팔마스순복음교회의 위치
사진자료
약력
- 학력:
1955년 3월 배재고등학교 졸업
1959년 3월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 졸업
- 경력:
1965년 5월 삼륭해운(주) 총무과장
1969년 8월 대림수산(주) 스페인 라스팔마스 지사 기지장
1975년 5월 대호원양(주) 스페인 라스팔마스 지사 기지장
1982년 8월 대통령표창 수상 (전두환대통령 현지 방문시)
1983년 2월 Canaan Trading, S.A. 창업: 원양어선 선미식 트롤선 할렐루야 1호 운영
2002년 3월 상기회사 폐업
2004년 3월 미국으로 이민 (New York)
2004년 5월 KCS 코로나경로회관 스페인어강사 10년 봉사
2006년 7월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뉴욕지회 부회장
2022년 6월 상기 뉴욕지회 회장 취임
- 교력:
1980년 5월 라스팔마스순복음교회 창립멤버
1993년11월 상기교회 제1호 장로장립
2005년 1월 뉴욕순복음 안디옥교회 수석장로
2010년 8월 뉴욕 프라미스교회 전입 협동 장로
2011년 1월 대뉴욕지구 한인장로연합회 부회장, 감사
2014년 9월 하나님의성회 뉴욕신학대학 교수
[간증문]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전지전능의 하나님”
저는 본래 불신자로서 40대 초반까지 예수를 믿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제 아내는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했기에 저희들의 결혼식도 교회에서 목사님 주례로 올렸습니다. 그때 제 철학은 사람이 선하고 착하게 살면서 남에게 나쁜 일 하지 않고 살면 되었지 꼭 하나님을 믿고 살아야만 되느냐는 주장이었지요. 하지만 제 아내가 교회생활 하는 것을 막을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나 1975년 이후 스페인에 다시 가서 살면서도 아내가 교회에 다니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로 연유로 아내 덕분에 제가 지각 교인이 되는 과정이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에 의해서 현재까지 이르게 된 것으로 압니다. 제가 1959년 한국외국어대학 스페인어과 1회 졸업생이었는데 졸업 당시에는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곳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졸업후 10년 동안을 일반회사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러던 중 1969년 가을에 제 아내와 결혼하기로 약혼한 상태였는데 어느날 갑자기 수산회사(대림수산)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만나본 결과 자기 회사가 민간최초로 원양트롤어업을 하는 회사로 당시 820톤급 원양 트롤어선을 스페인의 라스팔마스 어업기지에 투입했는데 지금 기지 창설요원을 구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현지에 출장중인 회사 사장으로부터 긴급 telex 연락을 접수한 바, 내용인즉 저와 만나서 얘기하고 빨리 여권수속을 밟아 출국시키라는 일방적인 지시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받은 제안이라 당황했지만 당시에는 해외여행이 극히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상상할수도 없는, 가족도 동반 시켜준다는 여러 가지 호조건이었음으로 고민끝에 조건을 수락하고 그해 가을에 결혼예정을 6월로 앞당기어 결혼식을 올리고 1개월 간 대림 본사에서 여권수속을 마치는 즉시 출국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전공했다는 스페인어도 10년동안 쓰지 않았기 때문에 다 잊어버린 상태였고 또 그 회사 사장과는 일면식도 없는 모르는 관계인데 참으로 기적적으로 맺어진 인연이었습니다. 실상인즉 그 회사 사장이 라스팔마스로 처음 출장길에 Madrid에서 한국대사관의 대사 비서(저와 외대 동문임. 후에 남미 주재 한국대사 역임)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가 스페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므로 라스팔마스 출장 업무를 너무나 잘 봤기에 그에게 반해서 그를 자기회사 어업기지에 기지장으로 채용코져 강청했으나 그는 국가적으로 보아 대사관에서 봉사해야 국익이 되므로 완강히 거절한즉 “그렇다면 당신이 한 사람을 추천해 주시오. 그러면 그사람을 무조건 채용하겠소."라고 하여 거기에 제가 지명 추천된 것이었습니다. 이는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한참후 제가 믿음생활을 하면서 생각해보니 우리들의 머리카락 하나까지 세심하게 헤아리신다는 하나님께서 저 같은 사람도 변화시켜 주시기 위하여 간섭하신 하나님의 놀랍고도 오묘하신 섭리였다는것을 깨달았습니다.
여하튼 이런 곡절끝에 저는 1969년 9월에 출국하게 되었고 제 아내는 여권수속 상 몇 개월 늦게 라스팔마스에 도착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기지 주재생활한지 1년 만에 당시 사회적으로 큰 화제였던 해외여행중인 병역미필자 일제 귀국조치에 해당이 되어 회사 사장이 신원보증한 제가 귀국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귀국하여 본사에 근무하면서 보충역 복무를 마쳤습니다. 그러던중 1975년 5월에 대호원양(수산회사)의 라스팔마스 기지장으로 발탁되어 다시 라스팔마스에 부임하여 주재생활을 하게 되었는바, 제 아내는 계속 교회는 나가야 되겠는데 한국교회가 없으니까 현지의 스페인 교회를 다니게 되었는데 그때 저는 아내를 교회에 데려다 주고 데려오는 운전수 역할만 해주었습니다. 헌데 아내가 다니던 스페인 교회에는 미국 선교사인 Roy Nylin 목사님이 (미국 하나님의 성회 파송 선교사) 아주 인자하시고 친절하셔서 제가 목사님 상에 대한 너무나 좋은 인상을 받은 분으로 가끔 저를 만나면 다과를 권하면서 자기가 혹시 무슨 도울 일이 없는가고 물었습니다. 그때 제 아내의 답답한 심경을 통역해주면서 아내가 교회에 출석은 해도 언어 소통이 안되므로 설교를 알아 들을 수가 없으니 가능하면 한국 목사님 설교를 직접 듣고 싶어 한다고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목사님이 1979년 봄에 Portugal에서 있었던 하나님의 성회 교단 국제회의에 참석 했을 때에 조용기 목사님을 만나서 Las Palmas 사정을 설명하여 한국 목사 파송을 부탁하게 되었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이 당시 독일 Berlin에 있었던 순복음신학교에 지시하여 신학교 학장 목사와 신학생 11명이 Las Palmas 를 방문하여 상황을 조사한 결과 당시 한국교민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과 Las Palmas 원양어업기지를 중심으로 대서양 상에서 조업하고 있는 한국어선의 선원수가 7,000명 이상이나 되는 상황이 파악되어 복음의 황금어장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1년 기간동안 신학생들이 2-3명씩 교대로 방문하여 교민상대로 가정예배를 인도해주고 선원 전도활동도 하며 교회 설립준비를 거쳤습니다. 드디어 1980년 5월에 조그만 차고를 개조하여 교회가 창립되고 초대 담임목사로 이정봉 목사님이 부임하였습니다. 한국 목사님이 오셨지만 고작 5-6 명으로 시작된 교회는 어려움이 많았으므로 목사님은 일천번제기도를 작정하시고 매일밤 자정부터 철야하며 새벽 제단을 쌓으시며 수시로 산기도에 가셔서 부르짖었고 순복음 특유의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인 믿음을 갖고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생명있는 메시지를 선포하시면서 불퇴진의 믿음으로 전진한 결과 모든 핍박과 고난을 극복하고 교회가 서서히 부흥하기 시작했습니다.
창립 멤버였던 제 아내는 미지근했던 장로교 신앙에서 뜨거운 순복음 신앙으로 바뀌면서 큰 은혜를 받고 앞장서서 극성스럽게 믿었고 그것이 당시 불신자였던 저에게는 광신자처럼 비쳐졌기에 자주 갈등이 생겼고 제 아내를 심하게 핍박했을뿐만 아니라 목사님에게도 섭섭하게 대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끈질긴 기도와 목사님의 기도에 힘입고 또한 제 주변의 신상환경의 변화에 따른 인생무상함을 깨달은 것이 계기가 되어 교회 창립후 2년만에 비로서 저도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고 이어서 남자분들이 계속 출석하면서 교회가 활기를 띄며 성도수가 증가됨에 따라 차고 교회에서 100명 정도 수용 가능한 지하실 교회로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선원선교에 열성을 다해 전도활동을 벌이므로 전통적으로 원양어선에서는 금기로 되어있는 여자들의 선박접근이 가능케 되었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교회 여선교회원들이 갖은 핍박을 무릎쓰고 헌신적이며 끈질긴 예수사랑으로 봉사해 주었기에 저들이 감동하여 한척 두척 자연스럽게 선상예배를 인정해 주게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유명한 선박 비빔밥전도가 시작되었고 이를 통해 많은 선원들이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으며 교회가 더욱 부흥 성장되므로 교민성도와 선원성도 추가로 인하여 100명 수용 장소로는 감당할수 없게 되었습니다. 또한 선교유치원 경영까지 구상하게 되어 더 넓은 곳으로 새로운 성전 이전 계획을 세우게 되었는데 당시 저희 교회는 월세 $300하는 장소였으므로 한 두 배 정도 되는 장소를 예상해서 월세 $600 로 임대할 수 있는 장소를 물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전 한국명예영사였던 현지인 저명인사(Virgilio Suarez)의 소개를 받아 찾아간 곳이 ALTAVISTA 건물이었습니다. 이 건물은 과거 최고급 나이트클럽이었든 곳으로 500명 이상을 수용할수 있는 초호화판 사교장으로 그 규모가 대지 2300m2 에 건물상하 각층 900m2되는 엄청난 곳이었습니다. 제가 Las Palmas에서 원양어업기지 책임자로 있을 때 VIP 손님이 오시면 꼭 모시고 갔던 유명한 장소였습니다.
이 건물은 Las Palmas 공원도시 지역에 Doramas 공원 동산 정상에 우뚝 세워진 가장 아름다운 관광명소였는데 우리가 찾아갔을 당시에는 경영부실로 인하여 2-3년 간 폐쇄되어 있었고 그동안 바로 옆에 판자촌이 생겨 그 정원마당이 쓰레기 처리장처럼 더럽혀져 있었습니다. 헌데 그 건물은 임대하는 것이 아니고 매각 하는 것으로 당시 $450,000을 호가하는 건물이니 $600짜리 임대 건물을 찾고 있는 저희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는 건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만 참으로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오묘하신 섭리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장소를 보기위해 사모님과 집사 몇 분이 함께 갔는데 건물안을 들어가 보니 천장이 돔형으로 되어있고 휘황찬란한 샹데리아까지 달려있는 웅장한 장소인데 사모님께서 “할렐루야!"라고 외치시면서 “마치 여의도순복음교회 축소판이네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우리 교회 성전이군요.”라고 말씀하시며 기뻐하시는데 저는 이곳은 판매하는 건물이고 엄청난 가격이니 빨리 단념하시자 하고 다른 장소를 물색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사모님은 산기도에 갔다가 귀가하신 목사님을 모시고 다시 그 건물을 찾아가 보여드리니 목사님도 감탄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우리 성전으로 예비해 주셨다고 말씀하시고 건물 전체를 사진을 찍어서 그 사진을 목사님 사무실 책상 위에 놓아두고 매일 기도하시기를 “ALTAVISTA 건물을 우리교회 성전으로 주시니 감사합니다.”라고 입으로 시인하시며 바라봄의 법칙으로 수시로 바라보며 주신 것으로 믿고 기도에 기도를 쌓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저는 ALTAVISTA 건물은 너무 크기도하고 우리 예산이나 처지에 전혀 맞지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저 나름대로 다른 곳, 적당한 장소를 아무리 물색해 보았지만 도무지 마땅한 장소가 나타나지 않았고 ALTAVISTA 는 아예 잊어버린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약 1년이 지나간 후인데 ALTAVISTA측에서 다시 연락이 와서 건물매매 건을 재교섭하자는 것입니다. 당시 우리교회 교인 대부분이 봉급자들이었기 때문에 건물을 구매한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제가 근무하던 회사가 라스팔마스 기지를 철수하므로 제가 회사를 사직하고 퇴직금으로 받을 자금이 우연치 않게 그때 입수되었는 바, 시기적으로 건물주 측에서 재교섭 요청이 바로 그 직전에 온 것으로 희안하게도 제 생각에 그 자금을 갖고 재교섭에 임해야겠다는 마음이 솟아난 것입니다.
사실상 그 자금은 퇴직후 사업자금으로 보관해야 할 자금이었는데 그것을 그대로 성전구입에 헌금하기로 생각이 난 것은 분명히 성령님의 강권적인 인도 하심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목사님께 찾아가 제 뜻을 말씀드렸더니 오히려 목사님이 놀라시면서 저의 생활을 염려하셨을 때 제가 단호하게 말씀드릴 수 있었던 것은 제가 늦게나마 주님을 영접한 것이 목사님과 제 아내의 기도 덕분이라고 알고 있으며 제가 교만하여 예수님을 외면했던 시절에도 그분은 저를 특별히 사랑해주셨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이 마당에 물질로나마 주님께 보답하고 싶다는 심정을 토로하고 이미 아내와도 상의가 끝났다고 말씀드리니 제 결심을 아시고 감동하시어 저희가족 모두를 위해 간절히 축복기도를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서도 1년 분 사례비 전액을 헌금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렇게 자금이 준비되면서 ALTAVISTA 측과 다시 적극적으로 교섭을 하게 되었는데 교섭과정에서 하나님께서 필요한 사람을 만나게 해주시고 여러 가지 방법을 알선 받고 건물대금을 분활 지불하는 방향까지 의견 조정이 되어서 당초$450,000 였던 건물가격이 대폭 조절되었습니다. 당시 미화 환율의 최강세 조건까지 혜택을 입어 최종가격이 $200,000 로 확정되었고 계약조건도 절반은 현금지불하고 나머지 잔액은 5년간 분할 지불하는 조건으로 구두 합의되어 성도들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에는 항상 마귀의 방해도 역사한다고 저희들의 교섭결과로 건물가격이 $200,000 로 결정되었다는 정보를 ALTAVISTA 주식회사 주주 중 한사람이 알아내어 변호사를 끼고 일시불 조건을 내세워 우리보다 앞질러 정식계약을 체결하고 만것입니다. 그러자 굉장한 장소로 이사가게 되었다고 한껏 기쁨으로 들떠있던 성도들은 허탈과 절망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때에 이정봉 목사님께서는 "성도 여러분, 절대로 절망하거나 실망하지 마십시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내게 능력 주시는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라는 말씀으로 우리들을 격려하시며 “우리 뒤에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그분이 함께 하실 때는 모든 것을 가능케 해주신다고 하였으니 우리 모두 기도하십시다.”라고 하시면서 전교인에게 24시간 연속 릴레이 기도를 선포하셨습니다.
스페인 계약자가 계약 1개월 내에 전액 현찰 지불조건으로 정식계약 한 것이기에 그것을 번복한다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상황이었건만 저희들은 교회 강대상 앞에 담요를 깔아놓고 전 성도가 동참하여 1시간씩 돌아가면서 제단을 한시도 비우지 않고 오직 우리 목표인 “ALTSVISTA 건물을 저희교회로 주실 줄 믿습니다.”라는 기도 제목을 강대상에 써붙여 놓고 기도의 불을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기도 한마디 못할 때인데 전 성도에게 배정된 1시간씩 기도의무를 지켜야 되므로 고민하고 있었더니 목사님이 “기도를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마치 아들이 아버지에게 이야기하듯 단순하게 하시면 됩니다. 또 감사만 되풀이 하셔도 됩니다.” 라고 가르쳐 주셔서 그대로 해보니 진실로 저희들이 감사의 조건들이 너무나도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목사님은 감사기도에 이어서 집중적으로 성전구입 목표의 기도제목으로 인도해주셨고, 계속 설교 때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인 소망의 메세지만 선포하셨습니다.
그러자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1개월 내 현찰 완불조건으로 큰소리 치던 스페인 계약자가 지불이행을 못하는 것입니다. 바로 저희들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하나님께서 길을 막으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스페인 주주의 한사람이었기에 건물주 측이 기간을 1개월 더 연장해주었고 우리는 더욱 열심히 울부짖으면서 기도를 하다보니 성도들이 은혜충만 성령충만을 받고 회개의 역사, 감사의 역사가 일어나서 교회에 더욱 충성 봉사하게 되었고 십일조 생활을 못하던 성도들이 십일조, 감사헌금, 건축헌금, 선교헌금까지 하게 되는 놀라운 역사들이 계속해서 일어났습니다.
계약기간 1개월 연장해준 것을 하나님께서 막으시니 2개월, 3개월, 4개월까지도 연장해준 것을 모두 막아주시고 결국 스페인 사람의 계약이 파기되고 계약권이 저희 교회에 넘어 오고야 말았습니다. 할렐루야! 진실로 그때 저희들의 감격은 이루 형언할 수가 없었습니다. 4개월이란 장기간을 쉬지않고 기도드림으로 인하여 전 성도들이 은혜받고 성령충만함을 얻어 더욱 열심히 봉사 헌신하게되니 교회가 더욱 부흥했으며 강하고 담대한 믿음이 생겼기 때문에 계약권이 저희에게 돌아왔을 때 1개월 완불조건의 계약 조건을 저희도 받아드리고 기도의 능력을 체험한 성도들이 또다시 계속 24시간 리레이 기도로 부르짖으며 기도했더니 1개월 계약기한 3일을 남기고 나머지 잔액을 모두 채워주셨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역사는 너무나 위대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성전건축의 기적을 통해서 저희들은 기도의 위력이 정말 엄청난 것임을 깨닫게 되었으며 저희들이 시간 드려, 물질드려, 그리고 온갖 정성을 다 드려서 간절히 울부짖으며 기도할 때 반드시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확실히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장장 4개월 동안이나 하루도 쉬지않고 전성도들이 참가하여 24시간 연속기도로 중보 기도한 것을 하나님께서 어여삐 보시고, 또한 지하실 교회시절에 이웃으로부터 시끄럽다고 핍박받은 사정을 아시고 이제 마음놓고 기도하라고 Las Palmas에서 가장 명당이라는 높은 동산 위에 아름답고 웅장한 성전을 선물로 주신 것으로 믿고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또한 확신하기는 이정봉목사님의 일천번제 기도제단의 뿌리가 교회개척 4년 만에 유럽에서 가장 큰 교회당 건물을 건축하게 된 기적의 원동력이 되었다고봅니다.
이상의 교회예배당 건축의 진행과정에 직접 참여하면서 저는 비록 눈에는 보이지않지만 알 수 없는 거대한 힘이 작용하는 것을 때때로 목격하면서 참으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확실히 체험할 수가 있었습니다. 전 성도들도 교회 건축과정의 하나님의 기적을 보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신하게 되었고 전 성도가 정성을 다하여 2개월 간에 걸쳐 성전 건물 수리를 마치고 1984년 11월 4일 감격적인 헌당예배를 드렸습니다. 성도들이 기쁨이 충만하여 교회에 더욱 열심히 봉사 헌신 충성하게되니 모두 성령충만, 은혜충만 받아서 가정과 직장과 사업장에 축복이 넘치게 되었고 교회가 날로 부흥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 자신도 성전건축과정을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기적을 체험한 후, 구원의 확신을 얻고 기쁨과 소망이 넘쳐서 교회 일에 더욱 열심히 봉사하면서 이정봉 목사님의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메시지에 늘 은혜 받으면서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믿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큰 믿음이 가슴에 벅차 왔습니다.
그러던 중 LOGOS 와 DOULOS 라는 복음 도서관 선박이 Las Palmas를 수차 방문했을 때, 그 선박에 승선 중인 한국 선교사들을 교회에 초청하여 간증을 듣고 또 그들과 함께 교제하는 가운데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상기선박은 승선원 전원이 자원봉사 교인으로 구성되어 세계 각국 교회로부터 추천된 교인들이 OM 이란 선교 기관에서 특별 훈련을 받고 승선하며 2년 승선계약 기간동안 일체 무보수로 헌신 봉사하며 오히려 자기들의 식사비용을 지불하면서 혹은 기관실에서, 조타실에서, 혹은 식당에서, 도서관에서, 브릿지 등 선박의 모든 곳에서 각각 항해사, 기관사, 갑판원 또는 조리사, 청소부 등으로 봉사하면서 세계 각국을 순방하여 선박이 도착하는 항구마다 복음서적을 염가로 판매하고 자체 전도팀을 구성하여 노방전도도 나가고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들을 선박으로 초청하여 각종 세미나 등으로 복음을 전하는 특수 선박이었습니다. 승선중인 자원 봉사자들이 목사, 전도사. 또는 평신도, 선교사 등 모두 신앙의 엘리트들로서 각자 자국에 있으면 대우받고 있을 훌륭한 일꾼들인데 만 2년 간을 복음을 위하여 완전히 자신들을 희생하여 봉사하는 모습을 보고 큰 감명을 받고 나도 저들 처럼 무엇인가 주님일에 헌신해보고싶은 충동과 도전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당시 회사를 퇴직한 입장에서 무엇인가 사업 구상을 하던 중 제가 원양수산업 기지에서 책임자로서 근무한 경험을 가졌었기에 350톤급 스탄트롤 어선을 운영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물론 이선박을 상업적으로 운영하되 동시에 복음을 전하는 선박으로 운영한다는 아이디어였습니다. 즉 전선원 교인화 목적으로 선장, 기관장, 항해사, 기관사, 조리사, 선원에 이르기까지 모두 교인으로 구성한다면 우선 신앙 안에서 화합이 잘 이루어 질 것이고 단합된 모습으로 조업에 임하면 어획 성적도 더 올릴수 있을 것이고 선상에서 예배 드림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보호하심을 힘입어 안전조업할 수 있으며 주일은 꼭 성수하면서 선원들이 완전히 안식을 취하고 예배 드리며 경건히 지내도록 방침을 세웠습니다. (사실상 어선에서는 24시간 계속 작업으로 한시간도 작업을 중단하지 않음.) 또한 어장에서 SSB 방송망를 통해서 타선박에 복음을 전파하고, 타선박과 접선시 마다 전도지와 신앙서적, 성가테이프, 간증 및 설교 테이프 등을 전달하면서 전도하는 선박을 운영한다는 분명한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당시 저는 퇴직금 전액을 교회건축 헌금으로 드렸었기 때문에 무일푼 상태였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큼 걱정이 되지않고 오히려 마음에 평강을 느꼈습니다. 저는 목표삼은 350톤급 트롤어선 동형 선박의 사진을 입수하여 제 책상위에 갖다놓고 그 사진을 바라보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ALTAVISTA 교회건물을 얻게 되기까지 전과정을 경이의 눈으로 지켜보면서 기적을 직접 체험했던 저는 이정봉 목사님께서 교회성전 건축을 위해 취했던 바라봄의 법칙 방법을 그대로 따른것입니다.
1985년 당시 Las Palmas의 어업기지 사정은 조업어장 문제와 어획부진, 그리고 유류파동의 영향을 받아 수산업이 전반적으로 극히 불황상태로서 일부선박이 철수하고 어장을 이동하는 어려운 시기였는데 저에게는 이 선박을 하기만 하면 반드시 성공할수 있을 것이라는 담대한 믿음이 불같이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들에게 늘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생산적인 메시지를 통해서 믿음을 심어주신 이정봉 목사님의 영향을 많이 받은 저는 목사님께도 저의 사업구상을 상세하게 설명드리고 기도를 부탁 드렸습니다. 특별히 기도를 부탁 드리면서 아직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는 잡히지 않는 상황이지만 믿음으로 이미 선박 이름을 '할렐루야 1호'라고 지어 놓았습니다고 말씀 드렸더니 목사님께서 이름도 잘 지었다고 크게 기뻐하시면서 복음선박의 의미를 높이 평가하시고 이 선박이 이루워지면 대서양 어장에서 획기적인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격려의 말씀과 함께 간절히 기도해 주셨습니다. 저는 계속 기도하면서 믿음의 선원 구성을 대상으로 선장, 기관장, 통신사, 항해사, 기관사, 갑판장 그리고 주방장에 이르기까지 지인 중에서 이름을 호명하면서 기도에 기도를 거듭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응답 주시어 한사람 한사람씩 필요한 요원들을 채워 주셨습니다.
계속 불퇴진의 믿음을 갖고 쉬지않고 기도하던중 하나님의 인도 하심으로 한국 여의도교회의 집사님과 연결이 되어 저의 사업에 관심을 갖고 있는 그분의 요청으로 일시 귀국을 헀습니다. 저는 사업 취지를 설명한 후 지참해간 사업계획서를 보여주면서 당시의 실질적인 사업계획서 상의 이익 지분은 적은 숫자였지만 저는 이 숫자에다가 풀라스 알파를 더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눅5장 1-7절 말씀을 보면 베드로의 기적이 기록되어 있는데 어업 전문가인 베드로가 밤새도록 고기 한마리도 잡지 못하였는데 예수께서 베드로의 배에서 무리에게 말씀을 마치신후에 베드로에게 명령 하신 대로 순종하여 그물을 던졌더니 그물이 찢어지도록 어획한 기적이 일어났는데 그 기적은 예수님 당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일어날수가 있습니다. 저는 그 기적을 확실히 믿고 기대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제 설명을 다 들은 그 집사님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저의 사업에 동참키로 결정하여 그분이 선가 $500,000을 현금투자하고 저는 Las Palmas 에서 출어 관계비용을 신용대부 하고 선박 운영을 총괄키로 하여 이익지분을 50대 50의 비율로 동업이 합의 되었습니다.
본래 적정 선박을 일본에서 찾을 계획이었으나 마침 Las Palmas 에서 어구일체를 적재하고 대서양에서 조업중인 선박을 기적적으로 만나게 되어 선가가 $450,000로 매매가 합의 되었습니다. 헌데 호사다마라고 그동안 선박을 물색하는 기간이 약 2개월 이상 경과되는 과정에서 동업자가 갑자기 중병으로 병원에 입원하는 사태가 발생하였고 급기야는 투자시기의 연장 요청이 들어왔으며 연장기간이 불투명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기적적으로 이루워진 호조건의 선박구입 시기를 놓칠 수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비상 수단으로 한국에 있던 본인 집을 매각하여 우선 선박구매 계약금을 지불하여 정식 계약을 체결하고 백방으로 자금을 융통하여 일부 중도금을 지불하면서, 한국에 이미 선원구성이 완료되어 대기상태에 있던 28명의 선원들을 믿음으로 Las Palmas 로 데려왔습니다. 통상 원양어선 선원들이 라스팔마스 기지에 도착하면 승선할 선박으로 직행하는 것이 원칙인데 선가 지불이 완료 되지못한 상황이라 도착 선원들이 선박으로 가지 못하고 모두 호텔에 투숙시켰습니다. 이때 선장, 기관장, 항해사 등이 집사들이므로 호텔에 있으면서 성경공부도 하고 예배드리면서, 회사장이 자금 문제로 어려움 당하고 있는것을 아는 선원들이 3km 거리에 있는 교회까지 구보로 새벽제단에 참석하여 모두 함께 하나님앞에 간절히 기도 드렸습니다. 선주측에서는 잔금 정산이 되지않고 계속 지불연장이 되니 계약을 취소하자고 재촉받는 절박한 입장까지 되었는데 저희들의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 주시어 기적적으로 한 집사님의 도움을 받아 선가를 완불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말할 수 없는 감격도 전에 교회건물 계약을 달성했을 때와 너무나도 흡사했습니다.
선박을 정식으로 인수한 후 어려운 가운데서도 출어준비를 마치고 목사님과 교우들이 함께 선상에서 감사 출항예배를 드리고 출항할수 있었습니다. 출항에 앞서 전날밤에 저는 선장, 기관장, 항해사 등 간부 선원들을 데리고 산기도에 올라가서 마지막으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희가 이선박을 상업적인 선박인 동시에 전도하는 복음선박으로 하나님께 드리기를 원합니다. 이를 위해서 교인들로 선원을 구성했으며, 주일을 성수하며 예배드리는 선박이 되며 말씀에 순종하여 전도하는 선박이 되겠습니다. 주님! 이번 첫 출항에 기적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실로 이번 항차에 $500,000 이상의 어획을 올리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정말 피땀 흘리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렵게 선박을 인수하여 출어경비까지 충당하느라 자금압박이 심하여 어장 선택을 함에 있어 어업허가서 비용이 저렴한 GAMBIA 어장으로 정하여 출항 시켰습니다. 본래 이 어장은 고기가 별로 없는 어장이었습니다. GAMBIA 어장에 도착해서 어업허가서 받느라고 1주일 체항하는 기간이 있었는데 그때에 현지에서 원주민 선교하고 있는 한국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목사님도 한국 선박을 만나니 반가웠고 더구나 할랠루야 1호란 이름을 붙인 선박을 만나서 신기했는데 선장으로부터 선박의 취지를 듣고 너무 기쁘고 감격해서 예배도 인도해주시고 간절히 축복기도도 받고 출항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실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어장에 도착하여 첫 투망을 한 순간부터 그물이 찢어지도록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선박에서는 SSB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매일 회사에 보고해 오는데 날마다 어획 일당이 $20,000-$30,000씩 어획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할렐루야 1호가 출항한지 42일 만에 라스팔마스 기지로 만선하여 입항했는데 하역한 결과 총어획고가 무려 $676,000 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참으로 하나님께서 베드로의 기적을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저희들이 출항에 앞서 산상기도에가서 간절히 부르짖을 때 $500,000 이상의 어획을 간구하였던 바 하나님께서 정확히 그 이상으로 채워주신 것이었습니다. 당시 극심한 불황시기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350톤급 트롤어선의 평균 조업일수는 70–80일을 소요했으며 평균 어획고는 $200,000-$250,000 정도였는데 할랠루야 1호의 경우는 입출항일자 포함하여 42일만에 $676,000의 어획고는 기적 중의 기적이었습니다. 유사이래 최고의 어획을 올림으로 말미암아 출항 당시 항간에서 배 이름을 유난스럽게 할렐루야1호 라고 지었다고 비방 하였었는데 1항차 어획 결과를 보고서는 사람들 모두가 놀라고 과연 무엇인가 있기는 있는 모양이라고 감탄해 마지않았습니다.
누가복음 5장 7절을 보면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고 기록되어 있는 바 그 말씀처럼 마침 근처에 있던 같은 교회 집사님의 선박도 불러서 가득 채우고 나서 그 다음에는 다른 한국 선박들을 불러 들여서 모두 풍성한 어획을 걷우게 되었는 바 그때 당시 수산업계가 최악의 불항 상태였던 것이 이렇게 GMABIA 어장의 호황에 힘입어 수산업계가 다시 활력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원래 GAMBIA 어장은 늘 부진한 어장일뿐 아니라 문어는 전혀 나지않는 어장이었는데 할렐루야1호가 그물을 던지자 마자 문어가 터져나와서 할렐루야1호가 베드로의 기적으로 1항차 대히트를 쳤고 이를 계기로 라스팔마스 수산업계가 불황으로부터 다시 소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면 불가능 한 것에서도 기적을 산출하여 주신다는 것을 또다시 체험 시켜주신 장면이었습니다.
여기서도 생각해보니 하나님 앞에서는 무엇이던지 거저됨이 없다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즉 심은 대로 거둔다는 법칙과,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는 하나님 우선주의를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제가 믿음이 약했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성령님께서 강권적인 인도 하심으로 인하여 퇴직금 전체를 성전건축 헌금으로 드릴 수 있었던 것은 제나름 대로 저의 정성을 다 드려서 심었던 것입니다. 당시 극심한 불황 속에서도 저에게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믿음을 갖고 원양어선을 할 수 있다는 강하고 담대함을 주셨기에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소원하던 350톤급 스탄트롤 어선을 소유케 되었는 바 이 선박을 주님 앞에 약속한 대로 우선순위를 확실히 정하여 선원들이 주일을 안식하며 예배드리는 사상 초유의 원양어선으로 만들었고 복음전도하는 선박으로 운영했더니 하나님께서 갸륵히 여기시고 놀라운 축복으로 갚아주신 것입니다. 정녕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변함이 없으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입증 시켜주신 것이었습니다.
마침 할렐루야1호가 첫항차에서 베드로의 기적을 산출한 시기가 1985년 7월이었는데 저희가 아름다운 새성전을 봉헌하고 그 기념으로 Las Palmas에서 조용기목사 초청 개신교 연합성회를 준비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조용기목사님이 9월에 개최된 성회에 오셨을 때 이정봉목사님으로부터 선교지에서 체험한 성전건축의 역사와 베드로의 기적 사실을 보고드리자 바로 이것이 순복음신앙의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믿음의 결실이라고 기뻐하시고 귀국하신 다음 주일설교에서 라스팔마스 선교지에서 일어났던 기적사례를 주제로 말씀을 증거하신 바도 있습니다.
이렇게해서 1985년 7월 이후 라스팔마스의 수산업계가 회복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우리 교회의 부흥에도 더욱 촉진제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크고 아름다운 성전을 허락해 주신 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원대하신 계획가운데 저희들에게 더욱 큰 선교비젼을 주신 것으로서 더 큰 일을 하라는 주님의 명령으로 믿었습니다. 이제 아무에게도 핍박받지 않고 마음껏 기도할 수 있는 엄청난 장소도 선물로 주셨으니 전심으로 모이기를 힘쓰고 말씀공부하고 기도에 기도를 쌓아서 나아가 전도하라는 주님의 지상명령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저희 교회 성전안 양쪽 상단부분에 “너희는 온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는 성구를 확실하게 써붙이고 전교인이 하나되어 말씀에 순종하면서 봉사와 헌신과 충성을 다하여 선교에 총력을 다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교회 창립이래 23년 기간동안에 선박전도를 통해서 10,000명 이상의 선원들을 교회에 등록시켰으며 교민선교는 교회학교를 포함하여 교세가 400명에 이르며 1985년 9월에 조용기 목사초청 개신교 연합성회를 개최한 이후 스페인 원주민 선교에도 꾸준히 힘쓰고 있어 이곳 까나리아섬 도서지역에 원주민교회를 지원한 것을 비롯하여 아프리카 지역에도 Morocco의 Agadir, Dakhla, Mauritania의 Nouadhibou, Burkina Faso 등지에 원주민 선교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Ghana의 테마순복음교회등을 개척지원하였으며 현재 본교회내 아프리카 선교회원 원주민들과 스페인 원주민들도 매주일 예배에 각각 70명, 60명선으로 출석하고 있으며 중국원주민도 50명(교회학교포함)선이 예배에 참석하고있습니다. 또한 선원선교는 과거에는 한국선원이었던 것이 지금은 모두 조선족 교포선원들을 위한 복음전파 사역으로서 그들을 제자훈련화 시켜서 그들이 귀국할 때 중국에서도 전도사역을 담당 할 수 있도록 제자훈련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곳 Las Palmas 는 비록 적은 섬이지만 국제적인 관광,상업도시의 면모를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서양에서 가장 손꼽히는 어선기지로서,상선기착지로서의 중요성과 지리적으로나, 기후적으로나 경제적인 환경 등 모두 중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선교전초 전략기지로서도 모든 여건을 갖추고 있어 선교의 폭이 무진장이라고 하겠습니다. 년간 관광객 10,000,000명이 입국하고 있어 가만히 앉아서도 세계 각국인 들에게 복음전파 할 수 있으며 수많은 외국선박 대상으로 전도활동 등 가능성은 무진장합니다. 또한 아프리카 오지에서 선교하고 계신 많은 한국선교사님들을 위한 휴식과 성령재충만을 제공할 수 있는 다목적 선교센타의 건립과 또한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전담교육기관 설립이 긴요한 시점에 있기에 이를 위해서도 비전을 갖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시 할렐루야1호 선박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할렐루야1호가 첫항차부터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소문이 나고 이 기적의 축복현장을 목격한 우리 교회 교인들이 수산업에 손을 대면서 너도 나도 선박이름을 할렐루야호로 붙이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5호, 7호, 9호, 10호 11호, 12호, 20호, 21호, 22호, 77호 등……. 할렐루야 선단이 트롤어선에서부터 시작하여 새우트롤 및 운반선에 이르기까지 무려 10여척으로 늘어났습니다. 선박운영의 취지는 상관없이 할렐루야호 이름만 갖다 붙이게 된 것이 저희들을 올무에 빠뜨리는 큰 실수였던 것이었습니다. 할렐루야1호의 경우는 분명히 사업 태동 시부터 상업적 선박인 동시에 복음전파 역할을 하는 선박으로 목표를 세웠고 실제로 주일 성수하며 선상에 예배실도 준비하여 예배드리며 전도 활동한다는 당초의 취지 대로 선박운영을 하였으며 선박 부식 사입시에도 술이나 담배는 일체 선적치 않는 원칙을 세우고 있었지만 할렐루야1호를 제외한 다른 할렐루야호 선박들은 일반선박과 조금도 다름없이 술, 담배 선적은 물론이고, 교인 선원구성도 아니고, 주일성수나, 예배나, 전도활동도 전혀 하지 않으면서 선박에 할렐루야 이름만 붙이고 조업을 했으니 하나님 앞에 얼마나 불충한 것이었겠습니까? '하나님의 성호를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주님의 명령을 곧바로 어긴 큰 죄를 범하고 만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할렐루야 선단의 대표격인 할렐루야1호 앞에 사랑의 채찍을 내리셨습니다.
그동안 할렐루야1호가 첫항차부터 베드로의 기적을 산출하며 2년 간의 1어기를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잘 마치고 1어기 동안을 자금관계로 인하여 동업체제로 운영했던 선박을 제2어기 부터는 저의 단독 운영체제로 시작하게 되었는데 1어기 기간동안 1항사로 수고했던 사람을 그가 조업 실력은 약간 미진하지만 집사 직분을 갖고 있는 신앙이 투철한 신앙인으로 믿고 있었기에 부족하지만 그를 선장으로 승격 임명하여 출범시킨 제2어기 첫항차에서 모리타니아 경비정에 나포되는 사고가 발생했던 것입니다. 처음에 사고 연락을 받았을 때 우리 선박이 아닐 것이라고 부인했는데, 왜냐하면 당시 우리 선박은 모리타니아에서 3일 거리 위치에 있는 기니 코나크리 어장에 어업허가서를 갖고 그 어장에서만 조업할 것을 단단히 지시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매일 회사 앞으로 일일 보고하는 SSB 방송을 통해서도 분명히 기니 어장에 있는 것으로 보고를 받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우리 선장이 친구 선장의 유혹에 넘어가서 친구 선박을 따라 모리타니아 해역까지 들어가서 불법조업을 하면서도 회사에는 허위보고를 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선박사고를 해결하기 위해서 벌금을 포함한 제반 경비가 현찰로 총 $500,000이 소요되었고 선박이 나포되어 있는 동안 선원들을 모두 호텔에 연금시키고 본선을 방치한 상태였음으로 어구 및 선용품 등 많은 것을 도난 당하여 사고를 해결하고 선박이 재출어하는데 추가로 십여만불이 더 드는 손해를 보았습니다. 이 사고를 통해서 깊이 깨달은 것이 있는데 하나님 앞에 불의하고 말씀에 순종치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길을 막으신다는 것입니다.
저희 할렐루야1호가 첫항차에서 베드로의 기적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증거하면서 당시 한국 어선단의 불황을 호황으로 바꾸는데 큰 역할을 한 것까지는 너무나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렸던 것인데, 할렐루야1호가 베드로의 기적에 이어서 계속해서 성업중이니까 선교에 대한 목표 의식이 전혀없는 선박들까지 너도 나도 할렐루야호 이름만 붙이고 나가서 조업한 것이 너무나 잘못된 것으로 하나님을 크게 실망시켜 드린 것이었습니다. 성수주일이나 전도활동도 전혀 안하면서 이름만 붙였으니 말입니다. 여하튼 이 사고로 말미암아 할렐루야1호는 재정적으로 큰 손실을 보고 막대한 부채를 안은 가운데 재출어를 시켰지만 선박운영에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그 타개책으로 1990년 초에 아프리카의 Ghana 어장으로 이동하여 Ghana측과 합작형식으로 선박을 운영케 되었으며 이어서 우리 교인들의 할렐루야 선단도 모두 깨닫고 할렐루야호 라는 선박 이름을 전부 바꾸고 자숙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1호를 가나어장에 투입하면서 선박명을 시온1호로 변경하여 가나 국적선 자격으로 조업시킨바 일시적으로 운영이 원만히 되다가 가나 대방측의 계약 불이행으로 인하여 재정적인 어려움을 많이 당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가족의 생활문제와 애들 3형제의 학비문제도 어려움을 겪었지만 우리 가족 모두가 신앙 안에서 굳건히 서서 기도하면서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데 최선을 다한즉 그 어려움 가운데서도 잘 인내할 수 있게 해주시고 그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참으로 숱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환경을 극복할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저희 가족 모두에게 하나님이 함께 해주신다는 확실한 믿음을 주셨기에 결코 좌절하지않고 인내하며 소망을 갖고 승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며 제가 신앙인이 된 것을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제가 이정봉 목사님으로부터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본받게 된 것같이 제 큰아들도 이정봉 목사님의 불굴의 믿음을 본받고 무엇보다 기도의 영을 받아서 기도와 교회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저희들이 매주 금요일마다 자동차로 1시간거리에 위치한 1600m 고지의 산상 철야기도 갈 때에도 따라 다니면서 목사님이 철야기도회를 마치신 후 기도원 산에 계속 남아서 토요일 하루를 온전히 기도하면서 말씀 준비하시고 주일 새벽 4시경 하산할 때 막바로 교회로 직행하시는데 저의 큰애, 호형이가 자주 금요철야 마친후 역시 기도원 산에 남아서 기도하고 말씀 묵상하면서 하루를 지내고 주일 새벽 목사님이 하산하실 때 같은 차를 함께 타고 내려오는 경우가 많았으며 그리하던 중에 결국 16살 때에 신학교에 갈 것을 지망했습니다. 사실상 저희 부부에게 결혼후 5년 만에 늦게 본 아들인데 그후 아들만 셋을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선물 주셨기에 저희 부부 기도 가운데 세명 중 누구라도 주의 종의 길을 걷는 아들이 나오기를 은연 중에 소원했는데 일찌감치 호형이가 신학교 지망을 하고 나선것입니다. 너무 일찍 지망을 했기에 좀 당황함이 있었지만 이목사님께서도 너무나 기특하게 여기시고 한국에 선교대회 참가하셨을 때 조용기 목사님께 부탁드려서 Oral Roberts University 신학과에 장학생으로 추천받게 되었고 고등학교 졸업 즉시 미국 유학길을 열어주셨습니다.
ORU에 유학하면서 2학년 여름방학때에 경제적인 사정 때문에 New York에 사시는 고모 집에 머무는 기간동안 ORU 출신 목사님 두분이 시무하고 있는 뉴욕퀸즈한인교회(한진관 목사 담임)에 출석하면서 봉사한 것이 인연이 되어 우여곡절 끝에 기적적으로 UN에 근무하게 되었고 ORU에는 당분간 휴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UN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리 부부에게 기도 부탁이 왔을 때 휴학을 일시 반대 했었지만 UN이란 국제기구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것이고 또 나이가 어린 때이니 큰 경험을 많이 쌓는 것이 무슨 일을 하던지 장래를 위한 보탬이 되겠다는 결론이 나서 일단 휴학을 하고 UN 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UN에 들어 가는데도 처음 동기부터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에 의하여 기적적으로 기회가 주어진 것으로 자격도 되지않는 호형이가 오직 말씀에 의지하여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면서 또한 아버지가 경험했던 것과 같은 바라봄의 법칙으로 기도한 결과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 UN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UN 근무를 하면서 역시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명문 Columbia 대학 야간부를 졸업할 수 있었으며 이어서 Columbia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현재는 Comerica Bank, California 에 근무중인바 ORU를 마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던 차에 이번에 Internet상으로 ORU 신학대학원 코스를 수강하고 있어 본래 호형이의 서원이었던 부흥사 내지는 전도자의 역할을 어떠한 형태로든지 꼭 하겠다는 의지로 공부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학위도 다 따고 한국어, 스페인어, 영어는 완벽하게 동시 통역 경험과 설교능력도 갖고 있으며 불어와 포루투갈어도 구사할수 있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전도자의 역할을 꼭 할 것으로 믿습니다. 호형이가 New York 생활을 할 때 두 동생을 미국으로 불러서 모두 공부할 수 있도록 길을 주선하였고 3형제 모두가 뉴욕퀸즈한인교회에서 함께 열심히 봉사하면서 둘째 해령도 형의 추천에 의하여 역시 기적적인 방법으로 현재 UN에 근무하면서 역시 야학으로 Columbia 대학 경제과를 졸업했으며, 셋째 해성이도 아르바이트 하면서 퀸즈대학 회계과를 전공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사업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신앙안에서 굳건히 서서 오똑이같이 일어나며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얘들이 모두 어려서부터 교회생활을 하면서 신앙이 몸에 배어서 봉사와 헌신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우선 순위를 분명히 정하고 나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어여삐 여기시고 형통한 길을 열어 주신 것으로 믿고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32세란 나이로 늦게 결혼을 한데다가 호형이를 결혼 후 5년 만에 얻은 아들이라 자손 후대가 늦어질 상황이었는데 호형이가 퀸즈한인교회에서 중고등부 교사로 함께 봉사하던 자매와 자연스런 교제의 결과로 호형이가 23세의 나이로 일찍 결혼하여 그 갭을 조금 메우게 되었으며 우리 부부는 신경도 쓰지 못했음에도 하나님께서 짝을 지어주시고 한진관 목사님 내외분께서 약혼식도 수배해주셔서 저희들은 결혼식 때 참석만 할 수 있었으니 이 또한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르겠습니다. 며느리도 믿음 좋은 가문 출신일뿐 아니라 미모와 지성을 갖춘 Stanford 대학 출신의 재원을 만나게 해 주셔서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하고 이제 손자, 손녀까지 보게 해주시니 저희들은 현재 그저 그저 감사, 감사의 생활뿐이랍니다. 저희들은 애들 학비송금도 부족했고 모든 것이 여의치 못하였으나 쉬지않고 기도의 단을 쌓으며 다만 몸된 제단에 열심히 봉사와 헌신하며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데 전심전력한 것 뿐인데 하나님께서 전후사정을 다 아시매 애들 문제를 다 책임져 주시고 자립할수 있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
그리고 제가 가나 어장에 저의 선박을 합작 투자한 이래 10년간을 Ghana에 출장을 다니면서 가나 하나님의성회 총회장 목사님을 비롯한 원주민 목사님들과의 긴밀한 교제를 가질 수 있었으며 현지에서 원주민 선교를 하고 있는 한국 선교사님들과도 지속적인 교제를 하면서 정글 속에까지 개척한 교회들과 오지교회들을 직접 찾아보고 선교활동에 동참하는 가운데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은 바 복음을 모르고 무지했던 자들이 전도에 의해서 변화받고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들을 수없이 보면서 제 마음 속에 선교에 대한 많은 도전을 받았고 어떻게하든 죽어가는 불쌍한 영혼들에게 복음전파를 더 확장해야겠다는 선교의식이 들끓어 올랐습니다.
또한 무엇보다 저의 선박이 가나 어장에 투입되었을 당시 그 어장에서 조업하고 있는 어선들에 한국선원이 400명 이상 되는데 그들이 전혀 복음을 접하지 못하고 있으며 저들이 입항하여서는 난잡한 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선원들을 선도 내지는 전도하기 위해서, 또한 교민 100여명을 위해서 한인교회의 설립이 시급함을 절실히 느꼈기에 이정봉 목사님께 보고하여 여의도 본부 순복음세계선교국에 수차에 걸쳐 한인교회 설립과 선교사 파송을 요청 하였는습니다. 본부의 사정상 수년간이 지연되었던 것인데 결국은 1997년 2월에 라스팔마스순복음교회에서 자체적으로 100% 재정지원하여 순복음 제단인 테마순복음교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월세로 시작했던 테마순복음교회는 불과 3년 반 만에 기적적으로 2000평 규모의 성전 부지를 확보하여 성전 건축에 전성도가 십시일반으로 동참하고 외부의 협조도 받아서 2001년 8월 30일 Tema에서 명소가 되리만큼 아름답고 웅장한 성전을 봉헌하였습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저희들이 10년 간을 가나 하나님의 성회측과 함께 기도하며 소원한 조용기 목사초청 가나 연합대성회가 2001년 8월 28-30일 기간에 성취되었고 이 역사적인 가나 성회기간 중에 조용기 목사님을 모시고 테마순복음교회 헌당예배를 드릴수 있었던 것도 정녕 잊지 못할 축복이었습니다.
한편 제가 가나 어장에 투입했던 트롤어선은 가나 대방측의 계약 불이행으로 인하여 제가 재정적인 어려움을 많이 겪었지만 계약 만료 시점에서 하나님의 강권적인 간섭하심으로 말미암아 가나 대방측으로 부터 정책적인 정산을 받기로 합의 되어 어선의 매항차 수양고에서 일부씩을 정산금액으로 수령할 수 있었습니다. 대방의 선박운영 차질로 다시 부채과다 사태가 발생하여 선박운영이 중지되고 채권단에 의해 선박이 압류된 상태에 이르렀는데 제가 받을 미정산금으로 인하여 제 2번 채권자로 해당이되어 저에게 선박운영 의뢰가 들어왔고 선박을 운영하여 채권 을 변제받는 방법을 제시 받았습니다. 허나 선박수리비로 $50,000이상 자금이 소요되므로 자금을 위해 기도하고 있던 중에 테마 항구에 정박중이던 선박이 너무 노후 선박이므로 침선 우려가 있다고 항만청 당국이 선박을 폐선창으로 예인하여 폐선조치를 하고 말았습니다. 이것도 생각해 보니 오히려 감사한 것은 선박이 33년된 노후 선박이므로 수리 하더라도 계속 수리비 과다가 발생 할것이고 고장도 잦을 것이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가릴 수 있는 가능성이 많기에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막아주신 것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요즘 저는 기도만 하면 계속 마음 가운데서 할렐루야1호를 부활시켜 가나 어장 복음화를 위한 복음선박을 운영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있습니다. Las Palmas에서 대서양 복음화를 위해 할레루야1호가 출범되어 첫항차에 베드로의 기적을 체험시켜 주시고 2년 간을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도록 축복해 주셨는데 그후 2어기에 불의의 선박 나포사고로 말미암아 도중 하차했던 것을 이번 기회에 가나에서 다시 부활시켜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심을 다시 한번 증거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만 하신다면 선령 20년 이내의 350톤급 스탄트롤어선을 구입하여 가나 어장에 조업 시킬 때 선장, 기관장, 간부 선원등 100% 교인으로 선원 구성하여 주일성수 선상 예배인도, 접선시 전도활동, SSB 방송망을 통한 어장에서 선박간 예배인도 등 가나어장 복음화를 목표로, 또한 가나 땅안에 아직도 복음을 접하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원주민 복음화를 그리고 기타 다목적선교 사역에까지 기여할 수 있는 선박으로 운영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 선박 운영을 통해 발생하는 수익금은 전액 선교사업에 재투자한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물론 현재 저는 재정상태 제로 입니다. 환경은 눈에는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으며 깜깜한 상황이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확실히 믿고 있으므로 하나님의 방법으로 할렐루야1호가 재 탄생하기를 간절히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살아 계셔서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주님께서 반드시 길을 열어주실 것을 확신하기에 오늘도 새벽 제단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무릎 꿇고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충성하기를 원합니다. 할렐루야1호를 꼭 부활시켜 가나 어장 복음화, 가나 원주민 복음화, 그리고 나아가 라스팔마스순복음교회가 꿈을 갖고 계획하고 있는 다목적 선교센타 건립, 선교사 자녀를 위한 교육기관 설립, BN TV 복음방송을 까나리아 7개섬을 카바하고 아프리카 연안국에 까지 전파가 도달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는 사업 등 기타 선교사역에 기여할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저의 이 기도가 반드시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응답주실 줄 믿고 감사드리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03년 1월
주님! 이제 제 나이 66세 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한번 기회를 허락해 주신다면 주님 오실 그날까지 제 마음과 뜻과 온갖 정성을 다 드려서 마지막으로 하나님앞에 봉사, 헌신하겠습니다.
라스팔마스 순복음교회 장로 남 태 현
<추 신 1>
상기 간증문은 2년 전에 쓴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부언코져 합니다. 저는 지금 New York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3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주님 은혜 가운데 기후 좋고, 인심 좋고, 풍성하고 아름다운 땅인 Canary Islands, Las Palmas에서 살게 해주시고 그곳에서 무엇보다 귀중한 예수님을 만나고 중생구원의 은총를 입은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교회 창립시부터 부족한 저희를 20여년 간 순복음 제단에서 봉사하게 해주시다가 이제 라스팔마스교회에서의 저희들 사명이 다한 시점이라 할 수 있는 아주 적절한 시기에 미국 이민의 길을 허락 해주신 것 또한 감사하고 있습니다. 큰 아들이 미국 시민권을 취득 하자마자 부모를 초청한 것이 예상보다 빨리 허가되어 2004년 3월 말에 이곳 미국 땅에 이민와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실로 10년 이상 얘들과 떨어져 살았는데 이제 온가족이 미국에 함께 살도록 인도해주신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와 감격이 넘칠 수밖에 없습니다. 큰 아들은 LA에서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면서 섬기는 교회에서 1.5-2세들을 위한 청소년 전도사역을 담당하고 있으며, 둘째 아들은 Columbia대학을 졸업하고 계속해서 UN 본부에서 8년째 근무하고 있으며, 삼남은 Queens 대학을 졸업하고 무역회사에 근무하며 퀸즈한인교회에서 모두 함께 봉사하고 있습니다.
저희부부는 10년만에 두 아들을 돌봐주면서 아직 미혼인 그들과 함께 New York에 살고 있으며 각각 비영리 단체에서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큰 아들 시절부터 애들이 10년 이상 봉사하고 있는 퀸즈한인교회에 그동안 모두 함께 출석했는데 한진관 목사님이 은퇴하시고 새로 담임 목사님이 부임하심으로 인하여 교역자들이 퇴임하는 과정에서 수석 부목사였던 이만호 목사님이 퀸즈교회의 지원도 받는 형식으로 교회를 개척하시므로 미주순복음교회를 세우셨는 바 본래 같은 순복음제단 출신인 저희 부부도 2005년 1월부터는 상기 개척교회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저희들은 이제 New York생활 10개월째 접어드는데 바쁜 이곳 생활에 많이 적응해가고 있으며 나름대로 보람되고 유익한 생활로 기쁘고 감사한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기도 가운데 하나님이 저희에게 어떤 사명을 다시 주실지 기대하면서 오늘도 꿈을 갖고 기도의 제단을 쌓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2005년 1월
<추 신 2>
제 간증문 추신(1)를 첨언한것이 벌써 6년이 지났으므로 추신(2)를 추가로 첨언합니다.
전술한 바와 미주순복음교회(1년후 뉴욕순복음안디옥교회로 개칭: 이만호 담임목사)를 섬기면서 저희부부는 이민 첫해부터 비영리단체에서 봉사할수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저는 KCS코로나경로회관에서 스페인어 강사로 봉사하며, 평소 존경하던 이승만박사를 기리는 사업인 건국대통령이승만박사대뉴욕기념사업회(당시회장: 김상모 목사)에서 부회장으로 자원봉사활동을 하였으며, 제 아내는 재미한국부인회-뉴욕예지원에서 총무직으로 부터 시작하여 회장직에 이르기까지 봉사하면서 기쁨과 섬김의 감사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습니다.
뉴욕순복음안디옥교회에서는 개척 당시부터 참여하여 수석장로직을 계속 수행하다보니 교회헌법상 제한선인 70세 이상까지 하게 되어 비록 교회사정 상 부득이한 이유가 있었지만 신입장로들에게 덕이 되지 못할 것이란 생각에서 완곡히 사양하다가 여의치못하므로 부득히 최선의 방법으로 교회 이적의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이미 20여년 전부터 당시 스페인의 라스팔마스순복음교회 부흥회 강사목사님으로 김남수 목사님을 처음 만나뵌 후 제 아내는 얘들이 모두 뉴욕에서 유학중일때 뉴욕을 방문하면 꼭 순복음뉴욕교회에 참석했었고, 그동안 순복음뉴욕교회에 대해서는 선교비젼과 선교활동을 익히 듣고 알고 있던 터이므로 저희 부부가 2010년 8월부터 프라미스교회로 전입하게되었습니다. 교회에 와서 보니 과연 듣던바 대로 선교비젼이 너무나 뚜렷하고 확고하며 특히 중점 선교사역인 4/14 Window 선교사역은 진정 교회사에 큰 획을 긋는 엄청난 선교사역임을 깨달았고 전세계 185천만 명의 어린이들을 품고 기도하며 저들 어린이들을 모두 구출하기위한 선교전투에 임하고 있는 프라미스항공모함의 승조원 일원으로 참여하게 됨을 무한영광으로 생각하며 감격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저희는 요즘 먼저 매일 새벽제단에 나가 교회선교사역을 위한 중보기도에 동참하고 있으며 중남미에서의 축구선교 현장에도 나가서 현장 감각을 실감하면서 기도작전에 동참하고있습니다. 제 자신은 저희 교회가 중남미 지역에 선교여행이 잦은 성도들을 대상으로 매주일 오후에 스페인어 강좌로 봉사도 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저희 부부는 신앙말년에 이렇게 좋은 교회에 와서, 좋은 목사님과 좋은 성도들과 함께 신앙생활 할 수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기쁘고 감사할 뿐입니다. 할렐루야!
2011년 8월
<추신 3>
추신 (2)를 기록한 지가 벌써 10년이 지났기에 그동안의 뉴욕 이민생활을 추가로 기록합니다.
프라미스교회에서의 신앙생활이 10년을 지나는 동안 우리 부부는 새벽제단을 쌓으며 간혹 중남미 선교여행도 동참하면서 보람되고 복된 선교사역에 참여하는 축복도 받게 되었습니다. 일찌기 미국에 유학 후 NY에 정착한 세아들은, 장남이 LA/NY 지역에 벤처기업을 운영하고있으며 큰며느리는 미국 증권회사의 간부이고 장손자는 금년에 대학졸업후 Amazon사에 근무하며 장손녀는 Up State에 위치한 Vassar대학에 재학 중입니다. 차남은 UN에 평생직원으로 근무, 둘째 며느리는 미국 제약회사에 근무하며 외동딸 손녀와 단란한 가정입니다. 삼남과 자부는 각각 Norhwell병원/한국병원에 근무하며 1남 3녀의 다복한 가정을 이루고있어 그저 대견합니다. 세아들 모두가 엄마와 신앙 안에서 성장하였기에 너무나 성실하고 모두가 효자노릇을 철저히 실행하고있어서 우리 부부도 행복하게 안정된 신앙생활 중에 있었던바 뜻밖에 어둠의 그림자를 맞게 되었답니다.
2018년 가을에 아내가 정기검진 과정에서 혈액에 이상이 발견되어 정밀검사를 한 결과 췌장암 초기단계로 발견되어 즉시 수술이 가능했고 많이 회복되면서 1년 반 이상을 계속 함암치료를 받아오던 중에 코로나 펜데믹기간 중에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어 재차 입원하고 여러 방법으로 시술과 치료를 병행했으나 암이 전이되므로 더 이상의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판정이 나왔고 결국에 호스피스 상태가 되었습니다.
호스피스 상태 소식을 듣자마자 장남이 LA에서 달려와서 24시간 불침번 간병을 담당했고 LA자녀들을 포함하여 모든 자녀손들이 찾아와서 엄마와 함께 아름다운 은혜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에 너무나도 감사했고, 또 특별히 감사한 것은 췌장암 말기 환자들이 극심한 고통을 겪는다는 것이 정설인데 아내는 준비되어 있던 진통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을 정도로 고통이 없어서 너무나 감사했고, 하나님의 특별하신 축복이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와 우리가족 모두에게 신앙의 상징이자 은인인 아내를 먼저 천국에 보낸 것이 너무나 안타깝고 슬펐지만 스페인의 Las Palmas에 순복음한인교회를 세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뿐만아니라 많은 교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특별히 순복음한인교회에서 10,000명 이상의 원양어선 선원들을 전도하여 등록시켰는데 가장 앞장서서 전도하고 봉사했던 '참 할렐루야! 아줌마!'이었음을 모두가 공감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천국에서 큰 상급 받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래도 저희가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2020년 6월에 아내를 먼저 천국에 보내고 어려운 시기를 보냈지만…. 그런 중에서도 감사한 것은 목사님들을 위시하여 많은 분들이 기도해주시고 격려해주시고 도와주심에 힘을 얻어서 빠른 기간 안에 모두 극복하고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는 믿음을 갖고 펜데믹 기간 중에도 교회의 줌영상예배에 동참하면서 말씀의 은혜로 더 많은 회복이 되었고 한동안 중단되었던 교인들을 위한 스페인어 강의도 줌방식으로 재개하여 강의하며 성도들과의 교제가 이루워졌고, A/G신학교의 스페인어 강의도 재개하게 되므로 활력을 더 얻게 되었으며… 그동안 중단되었던 애국단체(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업무도 재개하고 장로연합회 기도회 모임에도 동참하면서 많은 위로가 되고 힘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건강도 거의 정상적으로 회복되고 정상적으로 봉사활동에 임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지난 6월달에는 제가 미국에 이민온 후 2006년부터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뉴욕지회에서 16년간 봉사한 것이 인정되었는지 연로하고 부족한 것이 많은 저를 제17차 정기총회에서 뉴욕지회장으로 추대선출시켜주었습니다. 저는 생각해봅니다. 왜 저같은 부족한 것도 많고 나이 많고 연약한 사람이 이 중책을 감당할 수 있을까? 아마도 주님께서 네가 오랜기간 뉴욕지회를 위해 봉사한 경험이 있으니까 마지막 봉사를 한번 더해서 유종의 미를 거두어 보라는 명령으로 믿고 저 자신도 최선을 다해볼 생각을 갖고있습니다.
그동안 좌파정권에 의해서 한국근대사 역사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은 전교조의 농간으로 인하여 대한민국의 건국역사를 오도하여 청소년 학생들이 대한민국의 국부를 모르고 있으며 건국기념일이 없다는 것은 세계에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기에 어찌 하던지 우리 후손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반드시 가르쳐야 될 것입니다. 특별히 젊은 새대들에게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의 대한민국의 건국역사를 확실히 심어주기 위해서 교육기관으로 이승만 학당을 개설하고, 우남장학회 설립 등을 적극 추진하여 긍극적으로 건국절 제정을 목표로 삼고 관계되는 사업들을 추진할 예정입니다. 할렐루야!
2022년 9월
미국의 한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