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플러싱 코리아타운
플러싱 코리아타운의 문화지도
<1면> 파일:뉴욕코리아타운 문화지도 플러싱1 1.jpg <2면> 파일:뉴욕코리아타운 문화지도 플러싱1 2.jpg
플러싱 코리아타운의 기원
30년전 플러싱의 모습은 어땠을까. 메인스트릿과 유니온스트릿 등 다운타운 일대는 대부분 자동차 정비소 등이 들어선 공장지대였다. 청과.델리가게도 2~3개에 불과했고 루즈벨트 애브뉴를 중심한 양쪽은 벌판이었다.
30년 넘게 플러싱에서 부동산 중개업에 종사해 터줏대감으로 통하는 한미부동산 홍종학 대표는 "당시 플러싱은 곳곳이 허허벌판인 미개발된 지역이었다. 범죄가 잦아 사람들의 발길 조차 잘 닿지 않는 곳"이었다고 술회한다.
한인과 중국인들이 플러싱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초반. 최초의 한인 식당으로 알려진 메인스트릿의 플러싱팰리스가 79년에야 간판을 달았으니 한인 수가 얼마였는지 짐작할 만하다. 7번 전철 종점이 있는 플러싱에 한인 등 아시안 초기 이민자들이 자리를 잡은 이유는 교통이 편리하면서도 렌트와 생활비가 쌌기 때문. 당시 루즈벨트 애브뉴의 사무실 월 렌트는 250달러 미만이었다. 그러나 툭하면 아시안 업주들은 위협을 당했고 업소에 이유 모를 불이 나기도 했다. 한 중국계 건물주는 의도적으로 불을 질렀다는 의혹까지 받을 정도로 혼란이 극심했다. * 더보기 <ref> 창간 30주년 특별기획| 뉴욕중앙일보 | 2005/10/04</ref>
플러싱 코리아타운 위키백과
플러싱은 미동부 최초/최대의 코리아타운
플러싱 거리에 세 사람의 한인이 걸어가고 있을 때, 뒤에서 “회장님!”하고 부르면 몇 사람이 뒤돌아 볼까?
두 사람이 뒤돌아 볼거다.
그리고 돌아보지 않은 한 사람에게 당신은 왜 안 돌아봤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까?
그러면 “나는 목사인데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만큼 재미한인사회에는 단체와 교회가 많다.
또 재미한인사회에서 10명의 한인이 모이면 12개의 단체가 생긴다는 말도 있다. 어떻게?
10명이 각자 1개씩의 단체를 만들고, 10개의 단체가 모여 하나의 연합회를 만들어 총 11개의 단체가 만들어 진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그 연합회가 갈라져 또 다른 연합단체가 만들어져 모두 12개가 된다.
그만큼 재미한인사회에서 단체와 교회의 역할은 중요하다.
플러싱 코리아타운을 둘러보려면 주요 단체와 종교기관을 둘러보아야 한다.
| (파란색) 플러싱 주요시설 | (빨간색) 한인관련 장소와 공간 | (노란색) 사라진 장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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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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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퀸즈 중부의 마지막 한인 상인들 | 뉴욕중앙일보 | 2014/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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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references/>
미국 뉴욕주 코리아타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