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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벡 고려인과 한식

Koreatown Story

임영상 (타슈켄트국립동방학대학 한국어문학과 객원교수/ 한국외대 사학과)

우즈벡 고려인의 한식

소련 시기(1917년~1991년) 러시아인뿐만 아니라 소수 민족들도 자신들의 전통명절보다도 1월1일 새해와 11월3일 혁명기념일, 3월8일 여성의 날, 5월1일 노동자의 날, 5월8일 전승기념일 등 소비에트 정부가 제정한 국가명절을 지켜야 했다. 제정러시아 국가에서 명절로 지켜온 정교회의 주요 '종교축일'이나,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춘분 일에 지켜온 '나브루스'(새해) 축제조차도 공식행사를 가질 수 없었다. 그러나 1985년에 시작된 고르바쵸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에 따른 민족과 종교의 이중부활 현상에 이은 1991년의 구소련의 해체 과정을 통해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등 각 공화국마다 전통 명절이 부활된 바 있다.


구소련의 고려인 사회에서도 1989년 이후 설날과 단오가 민족명절로 복원되어 고려인(문화)협회 차원에서 경축행사로 치러져왔다. 페레스트로이카의 영향으로(1987년 이후) 민족어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고,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89년 평양세계청년축제를 계기로 고려인 사회가 역사적인 조국 한반도의 남북한 사회와 접촉이 많아지면서 민족의 전통명절이 고려인 사회의 기대 속에 다시 살아난 것이다.


1937년 가을과 겨울 사이에 중앙아시아(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로 강제이주 당한 고려인들은 그해 겨울 지방민의 도움을 받아 생명을 부지한 후, 1938년 봄부터 고려인들만의 콜호즈(집단농장)를 조직하거나 기존의 지역민 콜호즈에 편입되어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콜호즈의 주거지 가까운 곳에 가신님의 음택을 공동으로 마련했는데, 목숨을 건 이주열차를 비좁게 같이 탔을 때를 기억하자는 것일까. 고려인 공동묘지마다 세상을 떠난 고려인들이 촘촘히 몸을 맞대고 누워있다. 콜호즈의 평등정신을 사후에서도 구현한 것일까. 예외도 있겠으나 음택의 크기도 거의 비슷하다. 고려인들이 '조상의 날'로 지켜온 4월5일 한식은 페레스트로이카 이전에도 고려인을 고려인답게 해준 '민족' 명절이었다. 러시아적인 요소를 수용했으나 그들과는 차별적인 장례문화와 4월5일 한식이면 어김없이 묘지를 찾아 예를 갖추는 고려인을 지방민들은 존중심으로 대했던 것이다.


4월5일 한식과 음력 8월15일 추석이면, 원근 각처로 떠난 고려인들은 자신들의 고향인 콜호즈로 돌아온다. 성묘하기 위해서이다. 고려인들은 제사를 집에서 지내지 않는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도 3년상까지만 묘지를 찾는다. 그 이후로는 한식과 추석에만 성묘한다. 그러나 사람이 60세 이전에 죽으면 매년 망자의 생일날에 묘지를 찾고 60세 환갑상을 크게 차린 후에는 더 이상 찾지 않는다. 환갑잔치를 성대하게 치르는 고려인들의 풍습과 관련이 있다. 그런데 한식에 비해 추석은 음력으로 매해 날자가 바뀌고 가을철 바쁜 추수기간이기 때문에 '산(소)에 가는' 사람이 적고 상대적으로 지방민들의 주목을 덜 받았다.


1992년 우즈베키스탄공화국 독립 이후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사회에서는 한식과 추석행사를 더 크게 치루고 있다. 타슈켄트 인근의 고려인 콜호즈들과 타슈켄트 시의 고려인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쿨륙, 벡테미르, 세르겔리)의 고려인 교사와 학생들은 아예 학교에 가지 않는다. 세베르나 마약 콜호즈의 제65번 학교에서 만난 우즈베키스탄 교감 선생은 우즈베키스탄 선생이나 학생들도 '고려인이 조상을 기리는 한식 명절'을 잘 알고 있으며, '오늘은 수업을 하지 않는 대신에 다른 날에 보충한다'고 설명했다. 우즈베키스탄 고려인의 한식 행사를 관찰하기 위해 4월4일 오후 필자는 타슈켄트 시의 부도심 쿨륙에서 약 12km 떨어진 시온고(고려인들의 호칭. 원래는 스베르들로프였다가 우즈베키스탄 독립 이후 아흐마드 야사비로 바뀜) 콜호즈를 찾았다.


시온고 콜호즈 중앙마을 입구 대로변 왼편에 콜호즈의 고려인 공동묘지가 있다. 평소에는 문이 굳게 닫혀 있는데 4월5일 한식을 맞아 콜호즈의 상두막 회원들이 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묘지 주변의 풀을 베고 청소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내일은 분주할 것임으로 미리 준비하는 손길이었다. 콜호즈를 빛낸 사회주의 노력영웅들(특히 시온고 콜호즈를 선진 콜호즈로 만든 김 드미트리 제2대 회장)과 27세의 꽃다운 나이에 비행기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콜호즈 출신 소련국가대표 축구선수 안 미하일의 묘를 찾았다. 그가 지금 살아 있다면 소련의 축구사를 다시 써야했지 않았을까.


4월5일 새벽 5시. 황 나제쥐다 선생의 시모인 이 라야 할머니가 일찍 일어나 제수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돼지고기와 소고기, 닭고기가 삶아지고, 프라이팬에 물고기가 튀겨지고, 지름구비(기름이 많이 넣고 만든 일종의 찹쌀 팬케이크)가 만들어진다. 큰 아들 김 이고르와 다른 가족들도 일어나 그릇마다 정성스레 음식을 담는다. 마침내 큰 대야에 차곡차곡 제수음식이 쌓여지고 묘지로 향한다.


아침 7시. 벌써 공동묘지에는 사람들이 많이 와있다. 꽃을 파는 우즈베키스탄 사람도 그리고 집시 가족들도 일찍 나왔다. 4월5일 한식날이 다가오면 상인들이 반긴다. 고려인들이 풍성하게 음식을 장만하기 때문이다. 수년 전부터 집시들도 한식날을 기다리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른 아침부터 고려인 콜호즈 공동묘지마다 집시 가족을 태운 승용차들이 몰려온다. 시온고 콜호즈에도 줄잡아 30여 집시가족이 찾아온 듯하다. 손마다 커다란 가방을 든 아이들과 집시여인이 차에서 내려서는 묘지로 향하는 고려인들을 따라간다.


자동차를 타고 오는 사람, 자전거를 타고 오는 사람, 그냥 걸어오는 사람. 모두 조상의 묘에 도착해서는 주변의 풀을 베고 청소를 한 다음에 꽃을 장식하고 제사상을 차리는 것은 똑같다. 완전한 형태의 닭고기, 삶은 돼지고기와 소고기, 프라이팬에 기름으로 굽거나 증기로 구운 물고기, 삶은 달걀, 지름구비(기름이 많이 넣고 만든 일종의 찹쌀 팬케이크), 고추가 들어가지 않은 부추채, 쌀밥과 오이, 토마토, 과일(3, 5개 등 홀수로 준비)과 사탕(초코렛), 술과 음료수. 술을 따르고 세 번 절한 후 술을 바치는 것은 큰아들, 작은아들, 그리고 출가한 딸 가족 순서로 이어진다. 찬물에 쌀밥을 말고, 음식마다 일부를 떼어 덜어(과일도 칼로 일부를 자르고 초코렛도 일부 떼어) 신문지에 쌓아 묘지 윗부분에 오른쪽 상단에 놓아둔다.(고시레 음식) 그리고 참석한 가족들이 조금씩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성묘를 마친 고려인들이 돌아가자마자 주변에 기다리던 집시가 재빨리 고시레 음식을 집어간다. 오늘도 조상님이 드실 음식을 재빨리 집어갈 집시가족과 고려인 사이에 승강이질이 계속될 것이지만, 이미 고려인들은 집시들의 행태에 익숙해 있다. 나눔의 행사일 수도 있는데, 어떤 콜호즈에서는 아예 가난한 우즈베키스탄인들이 고시레 음식을 가져가기도 한다.


한식과 추석, 특히 한식은 콜호즈 고려인들의 만남의 장소이다. 서로 반갑게 인사하는 콜호즈 사람들. 그중에는 독일로 유학한 고려인 청년도, 러시아, 카작, 한국으로 일하러 나갔던 사람들도 있었다. 고려인들의 피와 땀이 엉긴 콜호즈가 쇠락하면서 많은 고려인들이 콜호즈를 떠난 상태이다. 그래서 그러한지 아무도 찾지 않은 묘지들이 눈에 뜨인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콜호즈를 찾는 고려인의 수가 줄어들 것은 자명하다. 다시 고려인 콜호즈가 고려인, 아니 한국인들도 찾아올 수 있는 고려인의 고향으로 살아날 수 있는 방안이 없을까.

우즈벡 고려인의 한식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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